04 벌어도 벌어도 가난했던 이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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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샤인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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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관대하고, 나에게만 인색했다]
나는 1남 2녀의 장녀다. 위로는 오빠가 하나, 아래로 여동생이 있다.
그 시절의 시골에서는 아들을 위해 딸을 희생시키는 일은 다반사였다. 오빠의 학비를 벌기위해 자신은 학업을 포기하고 직장으로 향하는 누이동생과, 남동생의 학비를 충당하기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직장으로 향하는 누나들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우리 집은 그나마 나았다. 오빠의 학비를 벌어오라는 강요는 받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장녀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나는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위에서는 아버지, 오빠, 동생 다음이 나였다. 좋은 일은 항상 오빠가 먼저였고, 안좋은 일이거나 어려운 일을 해결해야 할 때는 항상 내가 먼저였다. 오빠는 아들이라서, 동생은 어려서 내가 모든 것을 양보해야만 했다.
시골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청약통장을 달라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가지고 있는 돈도 모두 달라고 하셨다. 모아둔 돈이 없다고 하면 될 것을 곧이곧대로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 차곡차곡 넣던 적금을 해약하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모아두었던 비상금까지 털어 엄마에게 보냈다. 물론 오빠에게도 돈을 보내라는 전화를 하셨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냥 달라’였고, 오빠에게는 ‘빌려 달라’였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받은 보상금으로 엄마는 오빠에게 돈을 갚았고, 나에게는 갚지 않으셨다. 아파트 입주 후 전자렌지, 세탁기, 냉장고를 사드렸지만 오빠에게는 내가 샀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아들 덕분에 이렇게 새집을 장만했노라고 고맙다고 하셨다. 동생 결혼식이 있었을 때도 오빠네 부부에게는 예단비라며 목돈을 건네셨고, 나에게는 시골 보세가게에서 산 플레어스커트 한 장을 건네셨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몇 코스의 버스 정류장 쯤은 걸어 다니기 예사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신발은 너덜거릴 정도로 신고 다니면서도 나는 나 자신에게 쓰는 일에는 몹시 인색하게 굴었다. 그렇게 애써 목돈이 좀 모일라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돈을 써야할 곳이 미리 줄을 서 있을 때가 많았다. 읽고 싶었던 책을 포기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와 공연도 포기하고, 하고 싶었던 공부까지 포기하며, 벌어도 벌어도 내 옷차림은 남루했고, 내 생활은 옹색했으며, 통장 잔고는 대부분 ‘0’원이었다.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댁의 생활비를 드리기 위해, 가끔씩 현금이 필요하다며 손을 내미는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쥐어드리기 위해, 결혼 전부터 넣던 나의 적금을 미련없이 해약하고, 유모차도 없이 두 아들을 업고 안고 키우며, 면티 두 세 장으로 여름을 버티면서 고작 멸치 몇마리 넣은 김치찌개 하나로 나의 끼니를 해결했다.
30년이 훨씬 넘도록 나는 ‘나의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들에게는 너무나도 관대했으며, 정작 소중히 여기고 챙겨왔어야 할 ‘나’에게는 인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역시 갚아야 할 대출금과 자주 적자를 기록하는 통장이 내가 가진 전부이다. 물론 가족을 위한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를 가장 후순위로 미루는 나의 습성이 결국은 나의 발전을 방해했고, 더 나은 삶을 개척하는 길을 막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관대한 것은 좋으나, 나에게 인색하게 구는 일만큼은 멈추어 주었으면 한다. 가족도 소중하지만 나를 발전시키는 일 역시 나를 위한 가장 소중한 일이고 나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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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복님의 댓글
- 이행복
- 작성일
나의 행복이 가장 소중합니다
자공방에서 부~자되고 행복하세요

이행복님의 댓글
- 이행복
- 작성일
